20년간 고민했던 실전과 같은 스파링 훈련 방법

《목차》

. 태권도라는 길을 선택한 뒤 발생한 궁금증과 의문점이 계기가 되어 실전 격투기의 길로 들어서다.​

. 실전 격투기, 극진 공수도와의 만남

. 극진 공수도의 모순점으로 인하여 MMA 전향을 결심하다.

. 짧았지만 배움은 있었다.

. MMA를 하면서 발생한 궁금증 : 왜 훈련과 시합에서의 느낌은 다를까? 어떻게 훈련해야 시합과 가장 가깝게 훈련할 수 있을까?

. 칸트와 헤겔, 마르크스의 철학에서 답을 발견하다.

. 위의 철학은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는가?

. 비실전적인 슨도메 가라데의 성공

. 결론,

. 슨도메와 다른 우리, 희망은 있는가?

《》

. 태권도라는 길을 선택한 뒤 발생한 궁금증과 의문점이 계기가 되어 실전 격투기의 길로 들어서다.

고3 수험생이 되어서야 어릴적 가장 좋아했던 태권도 학과로 진로를 정하게 된 저는 실기 시험을 준비하던 중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지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품새는 왜 하는 것일까? 품새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일까? 겨루기와 품새는 왜 연결되지 못할까? 태권도는 과연 실전적*인가?

(*제가 말하고 있는 실전적이란 무기술이 없는 맨손 격투기 상태를 말합니다.)

에 대한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고 대학교에 진학하면 이러한 이유들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조차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으며, 태권도의 뿌리는 택견과 수박희라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만이 교과서에 적혀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 다양한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으며, 태권도의 뿌리는 송도관 공수도(쇼토칸 가라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이런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여 친일파 취급을 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실전 격투기, 극진 공수도와의 만남

태권도의 뿌리인 송도관 공수도를 찾아가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을 것이나 당시 저는 실전적인 무술에 대한 궁금증으로 한국 최초의 이종 격투기 동호회인 ‘암록’ 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무술을 이해하는 수준이 매우 낮았기에 이종격투기를 이해하지 못했고 다른 실전적인 무술에 대해 검색을 하다 사당 도장에 위치한 극진 공수도를 발견하여 찾아가게 됩니다.

사당 도장에 가까워질수록 기압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커지는 소리만큼 저의 마음은 더욱 설레었습니다.

그날의 설렘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이후 극진 공수도에 푹 빠져버린 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꿈에 그리던 전세계 웨이트 토너먼트 무대까지 밟게 되었고, 이후 중부 선수권을 끝으로 “극진 공수도는 이만하면 됐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극진 공수도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 극진 공수도의 모순점으로 인하여 MMA 전향을 결심하다.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다.’ 라고 외치는 극진 공수도가 안면 타격이 허용되는 킥복싱 시합과 MMA 시합에 (원로들에 의해) 도전하지 못하는 상황은 모순적이었으며,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글러브를 사용하는 킥복싱보다 오픈 핑거 글러브를 사용하는 MMA가 더욱 실전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였고 MMA로의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시련을 거쳐 35살이 되어서야 로드FC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고, 이 날은 저의 극진 공수도가 세상에 공개되는 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승리하여 돌아가신 최배달 선생님께 ‘극진 공수도는 MMA에서 통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옳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 드릴 수 있었던 매우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 짧았지만 배움은 있었다.

2019년 야마모토 세이고 선수와 경기 3일전, 교통 사고로 인하여 뇌진탕이 발생한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생방송 및 영건스 메인 이벤트 경기라는 책임감이 있었고 이번 시합을 포기할 경우 다시는 기회를 얻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인하여 시합에 출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턱뼈가 부러지는 충격적인 사고를 당하며 저의 짧았던 MMA 선수 생활은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이었지만 주먹으로 KO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상대가 보지 못한다면 KO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KO를 당하는 사람이 펀치를 보지 못할 때 몸의 긴장을 유지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의 뇌가 순간적으로 의식의 신호를 끊음으로써 KO가 만들어 지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묻지마 폭행을 당한 것과 같은 원리였습니다.

. MMA를 하면서 발생한 궁금증 : 왜 훈련과 시합에서의 느낌은 다를까? 어떻게 훈련해야 시합과 가장 가깝게 훈련할 수 있을까?

제가 선수 생활을 할 때에만 해도 대부분의 선수들은 복싱 글러브를 착용한 상태로 MMA 훈련을 하였습니다.

이 훈련으로 인하여 실제 MMA 시합에서 오픈 핑거 글러브를 착용하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는데 이 점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시합 때 사용하는 4oz 오픈 핑거 글러브가 아닌 8oz 오픈 핑거 글러브를 사용해보았는데 눈 주변 커팅 및 코뼈 골절 사고가 때때로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프로팀에 방문하면 선수들 중 한명은 코뼈가 부러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 팀만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페어텍스 코보호 헤드기어와 공도에서 사용하는 쿠와 비슷한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오픈 핑거를 낀 상태로 훈련을 해보았지만 실제 MMA 시합과의 괴리감(차이점)은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최근까지도 이 부분은 난제로 남아있었습니다.

. 칸트와 헤겔, 마르크스의 철학에서 답을 발견하다.

마지막 프로 시합에서 턱뼈가 부러지는 충격적인 사고를 당한 저는 삶의 방향을 잃었었습니다.

이 때 무상회의 고문인 종세 형님의 도움으로 인문학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이 공부가 그토록 찾아 해메던 의문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우리의 이성 또는 이상이 상부 구조이며, 감성 또는 현상이 하부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칸트는 감성과 이성을 현상계와 이상계로 나누어 그 둘은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고 설명하였으며,

철학자 헤겔은 상부 구조인 이성 또는 이상이 대립하며 세상을 바꾼다고 주장하였고

철학자 마르크스는 하부 구조인 현상 또는 물질이 세상을 바꾼다고 주장하였습니다.

. 위의 철학은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는가?

이 철학이 저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는지 극진 공수도의 역사를 되돌아보겠습니다.

쇼토칸 가라데는 슨도메 (상대의 얼굴 앞에서 타격을 멈추는 행위) 룰을 과거부터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현대 아시안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쇼토칸의 슨도메룰이 실전과의 거리가 멀다는 생각으로 인하여 극진가라데의 풀컨택트 (직접 타격) 룰이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풀컨택트 룰이 실전과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되었으나 당시 생각의 한계로 인하여 체급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안면 타격을 할 수 없어 (부상의 위험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먹은 쇄골 이하로 직접 타격하며, 킥은 안면을 타격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극진 가라데의 풀컨택트 룰은 안면 타격에 약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이것은 무에타이 vs 극진 가라데 3:3 시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시합은 무에타이 1 극진가라데 2로 극진 가라데가 승리하게 되지만 최고 선배인 구로사키 겐지 선수가 지게 되며, 구로사키 겐지는 태국에 남아 무에타이를 연구합니다.

이 후 일본 도쿄 도시마구 메지로가에 메지로짐이 탄생하게 되며 네덜란드 사람이자 그의 제자인 얀 플러스가 암스테르담에 메지로짐을 설립하며 더치 킥복싱이 완성됩니다.

더치 킥복싱의 훈련 영상을 보면 큰 글러브와 더블 신가드 착용을 하며 풀컨택트로 때리며 연습하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이 훈련 방식은 구로사키 겐지 선수의 모태 무술인 극진 가라데 풀컨택트룰의 전형적인 훈련 방법입니다.

이 후 극진회 아시하라 도장에서 배운 이시이 카즈요시가 독립하며(1980년), K-1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K-1 vs 일격 이라는 시합을 통해 극진 선수들과 K-1 선수들의 킥복싱 매치가 진행되었고 이 때 극진 선수들이 안면 타격에 약하다는 것이 증명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점은 극진 가라데는 맨주먹으로 시합을 하지만 K-1에서는 큰 글러브를 착용하였기에 안면 타격에 정말로 취약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확실하게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극진가라데의 풀컨택트룰을 벗어나고자 슈퍼세이프티를 이용한 여러 단체가 만들어지며, 안면에 풀컨택트 공격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혁신적이었지만 슈퍼세이프티는 새로운 문제점을 발생시켰습니다.

세이프티를 착용한 사람은 안면에 충격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위협적이거나 아프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세이프티를 착용한 사람을 다운 시키기 위해서는 휘두르는 펀치를 사용해야만 하며 스텝보다는 발을 붙히고 박아쳐야만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빠르고 작으면서 정확한 움직임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는 안면 타격에서 펀치로 다운되어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펀치나 킥에서 위력으로 쓰러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즉 신체에 긴장(=아이소메트릭)을 유지하기 못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다시 말하면 위력적인 것보다 정확한 거리,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타점과 정확한 임팩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시합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몸에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타격을 할 경우 자신의 체력만 고갈되며 상대에게 큰 데미지는 줄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해보았을 것입니다.

휘두르는 펀치를 사용할 경우 임팩트가 아닌 밀리는 (푸슁) 펀치를 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K-1(1993년 4월) 에 이어 UFC(1993년 11월)와 PRIDE(1997년 10월)의 시대가 열리며, 그래플러들의 활약이 두드러집니다.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당시 대부분의 격투가들은 그래플링 (주짓수와 레슬링) 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타격가들이 그래플링을 작창하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 글의 첫번째 논점인 쇼토칸 가라데가들의 활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 비실전적인 슨도메 가라데의 성공

실전에서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던 슨도메 가라데가 어째서 UFC 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슨도메 가라데가 시대를 초월하는 타격의 정수와 진리를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타격이라는 것은 결국 0 과 100 입니다.

0과 100이란 상대에게 닿는 지점에서 100이라는 힘을 사용해야만 내 체중의 100이라는 힘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속도는 설명을 위해 뺐습니다.)

즉, 100 직전인 99에서 타격을 멈춤으로써 자신의 최대 파워를 낼 수 있는 거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멈추는 룰이 몸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0 과 100의 원리를 몸에 완전히 체화시킵니다.

* 또는 100의 거리에서 의도적으로 주먹을 말아 쥐지 않음으로 상대에게 입히는 데미지는 이론상 0으로 만들고 최대 파워를 낼 수 있는 거리를 완벽하게 체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는 나를 때리지 않으며, 보호해준다.” 라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기술적으로 이상적인 영역*에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며, 나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상대를 보호해야만 하는 상황이 타인에 대한 감사함과 존중심을 길러지게 만들어주며, 이것이 정신적 수양으로 연결되어 무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이상적인 영역 : 실전과 근접한 또는 실전과 같은 영역

그렇다면 슨도메룰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복싱, 킥복싱, 무에타이처럼 풀컨택트로 때려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위해서는 샌드백, 미트, 단련대 치기 등을 통해 자신의 위력을 시험하며 훈련하는 부분을 추가하여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UFC 이전의 K-1 시절, 슨도메 가라데가들은 왜 활약하지 못했을까요?

이것은 링과 팔각 케이지라는 공간 때문입니다.

링은 코너에 몰리게 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팔각케이지는 그 크기가 링보다 훨씬 넓으며, 코너에 몰려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가라데의 전굴서기, 후굴서기, 기마서기 보법은 링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사용하기에 복싱 스텝보다 불리하지만 넓은 옥타곤에서는 복싱 스텝보다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픈핑거 글러브의 발달로 복싱 글러브의 형태를 벗어남으로써 가라데 본연의 맨주먹 타법에 근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쇼토칸 가라데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됩니다.

. 결론,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는 이상계와 현상계라는 것의 긴밀한 관계와 헤겔의 상부 구조 및 변증법, 마르크스의 하부 구조를 빗대어 보면 쇼토칸 가라데는 이상계라는 상부 구조를 시대를 초월하여 지키고 있었으며,

그것을 마르크스의 하부 구조적으로 바라본 사람들이 룰 (=규칙 : 직접 타격한다. > 부상 위험으로 직접 타격 불가능 > 극진 풀컨택트룰로 발전) 과 헤드기어 (= 도구를 발전시켜 직접 타격한다.) 라는 현상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실전과 멀어지고 만 것입니다.

진리와 진실은 관찰만을 통해서 접근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이상을 통해 그 속에 숨어있는 본질을 바라보아야만 진리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본질이란 이상계라는 현상계를 초월하는 완벽한 이론을 말하며, 그것은 현상계의 도구와 규칙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통해 헤겔이 말하는 역사적 변증법*으로써 발전해온 것을 알 수 있으며, 우리는 본질과 진리에 더욱 근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헤겔의 역사적 변증법인 정립, 반정립, 종합 : 슨도메 가라데 (정립) > 풀컨택트 가라데 ~ 글러브 가라데, 슈퍼세이프티 가라데 (반정립) > UFC 의 탄생으로 넓은 옥타곤, 4oz 오픈 핑거 글러브의 탄생, 슨도메 가라데의 증명 (종합)

. 슨도메와 다른 우리, 희망은 있는가?

2014년 5월 25일 일요일, UFC173에서 TJ 딜라쇼가 UFC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이 사건은 풀컨택트 가라데가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혁신적인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극진 출신의 바스루텐*을 시작으로 그의 제자인 드웨인 루드윅*이 혁신적인 스위칭 기술 시스템을 완성하였고, TJ딜라쇼라는 선수에게 전수되면서 정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드웨인 루드윅의 “뱅무에타이” 시스템에 영향을 받아 발전시키고, 복싱과 무에타이의 기술들을 받아들임으로써 현대 격투기 무대에서 통하는 무상회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스루텐 : UFC 헤비급 4번째 챔피언

*드웨인 루드윅 : 전 K-1, UFC파이터, 팀알파메일의 코치가 된 이후 유명세를 얻었다.

*물론, 이 외에도 척리델, GSP 등의 파이터가 있었으나 극진 고유의 좌, 우 스탠스 스위칭 기술을 근거리에서 자유롭게 사용했던 파이터는 없었다.